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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5.31, 조회수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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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포호수 홍장고사 기념조형물 및 설화전승에 대한 제언
내용 홍장고사 - 왜 이것을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마는가.

홍장고사는 강릉시 저동 경포호를 배경으로 조선초 강원도 안렴사를 역임한 박신과 강릉 기녀 홍장에 얽힌 이야기가 전승되어 설화로 정립된 것이다. 이 설화를 두고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고 볼 수 있는가.

관계당국 및 유관 단체에서는 이 설화를 관광자원화하고자 조형물을 만들어 기념하는 한편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 설화에 담긴 본질적 가치의 측면에서 그 시도는 재고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승되는 설화의 내용을 보면,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사대부들의 풍류 놀이 속에 담긴 장난스러운 놀림이 중심에 있으며, 이를 위한 속임수와 상황극이 중요한 설화적 요소로 작용한다. 출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승되는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고려 우왕 때 박신은 백성을 잘 다스려 명성이 있었다. 강원도 안렴사가 되어 강릉에 가서 기생 홍장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강릉부사 조운흘이 박신을 놀리려고 거짓으로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니 박신은 매우 슬퍼하였는데, 어느 날 조운흘이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호에서 밤 뱃놀이를 하자고 했다. 조운흘은 미리 홍장에게 알려 고운 옷으로 단장케 하는 한편, 늙은 관인에게는 눈썹과 수염을 하얗게 하고 의관을 훌륭하게 차리게 한 다음 따로 마련된 놀잇배에 홍장을 태우고 배를 몰아 오도록 하였다. 안개낀 밤 호수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홍장이 탄 배가 마치 신선들의 놀잇배인양 보이도록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박신을 속여 놀래켜 주고자 한 것이다. 박신은 다가오는 배에 타고 있는 홍장의 모습을 보고 정말 죽은 홍장이 신선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나타났다고 여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잠시 후, 박신은 눈앞에 있는 홍장이 신선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 바로 그 홍장임을 알게되었고, 비로소 자신이 조운흘에게 속임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런 설화의 내용 어디에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남녀간의 애틋함이란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 내지 역경 등의 극복을 통해 입증되곤 하는데, 이 설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없다. 물론, 박신과 홍장 사이 오갔을 감정이 애틋하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설화가 주는 전체적인 감흥은 남녀간의 사랑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한 사대부 관리들간의 잘 기획된 속임놀이, 그로 인한 유쾌한 해프닝이 아닌가 싶다.

신분의 구분이 엄격했던 시대에 지체 높은 관리와 관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일화가 어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가뜩이나 경포호 홍장암 주변에 설치된 기념 조형물을 보면 박신을 완전히 중늙은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된다면, 지체 높은 중늙은이가 자신의 딸과 같은 연령의 관기를 사랑이라는 핑계로 취한 것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 해피엔딩의 요소로 박신이 홍장을 면천시켜 데리고 갔다는 일화도 전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법으로도 국가재산을 함부로 취한 것이 되는 불법행위이다.

박신을 표현한 조형물이 중늙은이처럼 표현된 것은 박신이 당시 안렴사, 즉 지방장관이었으니 상당한 연령에 달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오는 오해 내지 당시의 관직체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비록 설화에서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 우왕 때로 하고 있지만, 설화속의 주인공들은 조선 개국 다음해인 1393년 경 설화속에 언급된 동일한 관직을 역임한바 있는 실존인물들이다. 즉, 설화속 주인공 중의 한사람인 박신은 1393년에 6개월 임기인 교주강릉도안렴사를 제수받았고, 조운흘은 1392년 강릉부사에 제수되어 1393년에 사직한 후 다시 검교정당문학에 제수되었다. 당시 박신의 나이는 30세, 조운흘은 60세였다. 여주인공인 홍장은 시문에 능했다고 하는데, 비천한 관기의 신분으로 기록이 없어 생몰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당시 나이는 대체로 16세~20세 가량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조형물을 설치한 것처럼 문화의 주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 조차도 설화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문화의 올바른 전승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안렴사라는 관직은 비록 지방장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지만, 전임관이 아니라 사명지임관으로 중앙관직을 유지한 채 6개월의 임기로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것이고, 품계 또한 4품 내지 6품으로 낮은 편이다. 반면 강릉부사는 대도호부사로서 정3품관이다. 비록 박신이 수령에 대한 체찰과 민생, 형옥, 조세, 군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방관인 강릉부사 조운흘이 도장관격인 그를 놀려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품계상의 차이도 크지만, 나이로 봐도 셋째나 넷째 아들 쯤이나 될까 싶은 박신이니 조운흘로서는 기생에게 마음을 뺏겨 상심하고 있는 박신의 모습을 보며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을 듯 싶다. 한편으로는 젊은이를 대하는 나이든 사람으로서의 후덕함과 위트넘치는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상황극 재연의 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특히 강릉지역의 효.장의 서에도 부합된다.

부득이 설화를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스토리텔링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런 이야기의 초점부터 다시 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젊고 혈기방장한 박신이 체찰의 대상이 되는 강릉부사로부터 놀림까지 받아 가면서도 신분을 초월하여 미천한 신분인 기생 홍장을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해피앤딩이었다' 고 말이다.

현재의 조형물에서 보이는 정도의 신분과 연령의 차이에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설정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어떻게든 꿰어 맞춘 사랑이라는 설정에서 아무 감동도 느낄 수 없다. 일반이 화를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니 조형물은 반드시 개선되어야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지 염려스러운 것이 있다.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에 흔히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고착된 정절관념 및 요구가 그것이다. 이 설화에서도 홍장의 정절이 표현되고 있는데, 이 얼마나 잔인한 생각이란 말인가. 기생에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조차 없는 관기에게 정절을 기대하는, 저급한 남성 일반의 심리가 기저에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설화를 발굴해 문화자원으로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현대인 또한 이를 당연시하여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뒤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장설화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풍류놀이 속에서 놀림과 속임수라는 요소를 더하여 상황극이 연출 되었다는 점에 있다. 상황극의 재연이라는 점에서 이는 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중차대하다고 할 것이나, 오늘의 기념조형에서 이것이 간과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어쭙잖은 사랑타령으로 변질되어 설화의 본질적인 요소마저 해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념조형에서 느끼는 박신과 홍장 사이의 사랑이 그리 빛나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듯 하다.

이에 더하여 홍장설화와 연관된 인물연구의 미흡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강릉과 관련한 역사적 인물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지역의 설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인물은 그리 흔치 않다. 홍장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나, 박신이나 조운흘에 대한 사료는 비교적 잘 남아 있으니 이들 인물에 대한 연구 또한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석간 서하옹 조운흘(1332~1404) 이인복의 문인으로 1357년(공민왕6) 문과급제 후 1392년 조선 개국 시기에 강릉부사를 지냈다. 이듬해에 병을 핑계되고 사직해 광주로 내려갔다가 다시 검교정당문학이 되었는데, 그 뒤로 관직에서 떠나 여생을 보내다가 스스로 묘지를 짓고 73세에 죽었다고 한다.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칠언절구의 시가 <동문선>에 전한다.

석봉 박신(1362~1444)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1385년(우왕11) 문과에 급제 후 1392년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1393년 교주강릉도안렴사를 거쳤으며, 이후 호판, 병판, 이판, 의정부찬성 등을 지냈고, 말년에는 12년간의 유배 끝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홍장설화에 더해 이들 인물의 행적과 시문들을 잘 갈무리하여 일반에 소개한다면 보다 나은 지역문화자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작성자 임창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관광과 2020.06.18
    안녕하세요 임창선님, 강릉시청 관광과입니다.
    관광거점도시 사업 추진과 관련해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강릉 내 지역문화자원 고증과 관련한 고견은
    관광 안내 개선 사업추진 시 참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이 언제든지 거점도시 게시판 또는 '시민제안' 게시판을 이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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