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면

작성일 2017.01.17, 조회수 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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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위촌리
유래 위촌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우출이라고 하다가 1916년 골아우(鯨岩洞),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恒生洞), 지암돌(芝岩洞)을 합해 중국 주나라의 재상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와 같다고 하여 위촌이라 했다.
渭村里의 속명이 우출인 것은 마을 제일안쪽 골아우에 있는 臥牛型의 묘자리에서 소가 나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그러다가 300여년전 풍기 고을원을 지낸 渭川 金世祿이란 분의 호를 따서 위천이라 하다가 그후 “川” 자 대신 “村”자를 썼다. 위촌은 조선조시대 그림을 잘그린 명서였는데 특히 대나무를 잘그렸다. 그가 그린 대나무에서 밤에 바람소리가 났다고 한다.

마을 서쪽뒤 사실이재와 멍애재가 높이 솟아있고, 마을 한가운데로는 골아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유천동, 죽헌동으로 흘러 경포호로 빠지는 앞내(전천)의 상류인 연계가 흐른다.

내를 중심으로 남쪽이 1리, 북쪽이 2리가 된다. 마을 양지쪽에 송양초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는 원래 송암리에 있던 것을 옮겨 송암리의 “송”자와 위촌리 양짓말에 있던 양석제(서당)의 “양”자를 따서 송양초등학교라 했다. 현 학교 아래 기와집 부근에 서당이 있었는데 한일병탄 후 일본인들이 강제로 없애버렸다.

마을은 고려때 강릉김씨, 강름함씨, 성주이씨, 강릉최씨들이 들어와 살면서부터 열렸고 약 400년전부터 도배제가 있었는데, 마을의 제일 어른인 촌장을 마을 주민들이 뽑고, 정월 초이튿날에 촌장집에 노소 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촌장께 세배를 드린다. 이때의 비용은 마을계인 대동계에서 부담한다.

마을입구(죽일과 경계지역)에 역두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땅속에 묻히면 마을사람들이 잘 살고, 바위가 땅 위에 솟아나면 마을사람들이 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성산면 가운데서 아직까지도 이곳에 명당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구산은 역촌이어서 나쁘고, 금산은 김씨들이 많이 살아 나쁘고, 송암은 강씨들이 많이 살아 나쁜데 이 마을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경포동(유천동), 홍제동, 서쪽은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은 관음리, 금산리, 북쪽은 송암리와 접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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