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면

작성일 2017.01.17, 조회수 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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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대기리
유래 유기[劉基:중국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이다. 자는 백온(伯溫). 천문·병법에 능하였으며, 명(明) 태조(太祖)를 도와 중원(中原)을 얻어 성의백(誠意伯)이됨]를 추사(推思)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사(祠)를 강선당(講善堂)이라 하고 그 상리(上里)를 소기(小基), 그 하리(下里)를 대기(大基)라 했다.
《嶺東民俗志 : 地名傳說編(1972年刊)》

대기리는 본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큰 터가 있어 한터, 큰터, 대기라 했고, 또 본 리의 점구터를 대장터라고 한데서 마을 이름의 유래을 찾을 수 있다. 1759년 《여지도서》에도 대기리라 기록되어 있다. 효종 때 밀양 박씨가 창설 이후 각 성씨들이 이주해 왔다. 1916년 늪골(樓洞), 늘막골(板幕洞), 도화목이(桃花洞), 마지목이(牛項), 용수골, 작은터(小基洞), 갈밭골, 벌마을(坪村), 곰자리, 닭목이(鷄項), 바람불이, 석동거리(三里洞), 배나드리(船渡里), 다릿골(橋洞), 다리재(橋峙), 제도리(濟渡里), 새물터(間水基), 놀거리, 피늪, 자웃골, 소란, 가락동(佳樂洞), 동초밭, 황철떼기 등을 병합하여 대기리라 하여 상구정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원체 넓어서 처음엔 3개리로 되어 있었으나, 근간에 고루포기산 중턱을 개간하여 고냉지 채소를 심는 경작인들이 있어서 마을이 새로 생겨 4리까지 되고 현재 대기리는 고랭지채소 경작인 중심으로 거주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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