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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강릉소개 일반현황 읍면동 지명유래 성산면

성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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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소개 > 일반현황 > 읍면동 지명유래 목록 - 번호, 지명, 유래 정보 제공
번호 지명 유래
10 산북리 산북리는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새재(왕산면 도마리와 경계)뒤가 된다고 하여 산 뒤, 산두(山斗)라 했는데 1916년 나맬, 버당말(坪村), 자포골(自飽洞), 좌망두(坐望頭)를 합하여 山北里라 하여 하구정면에 속했다가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될 때 구정면에 속했다. 그후 1983년 2월 15일 "읍면 행정구역조정"에 따라 성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구정면 제비리, 서쪽으로는 오봉리, 왕산면 도마리, 북쪽으로는 구산리, 오봉리와 접해있다.
9 오봉리 오봉리는 1916년 오봉산 밑에 있어서 오봉리라 했다. 마을 뒤에는 대관령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낙맥에 제왕산을 중심으로 산봉우리가 5개가 나란히 서 있고, 마을 뒤엔 오봉서원이 있다.
8 어흘리 어흘리는 1914년에 가마골, 문안, 반쟁이, 굴면이, 망월이, 제민원을 합쳐 어흘리라고 했다. 어흘리는 대관령을 끼고 있는 비교적 넓은 지역으로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의 모습이 넓고, 기다랗게 물건을 늘어놓은 것처럼 되어 있다. 어흘리는 주위의 여러 지역을 총칭한 지명인데 "어울리다, 만나다"라는 뜻인 느느리, 느러리 라는 말을 음차한 것이다. 그리고 於屹이라는 것은 여러 골짜기의 물이 합수하는 곳의 지명이다.
7 보광리 보광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보현촌, 보광동, 보갱이라 하다가 1916년 무일동, 삼왕동, 무시골을 합해 보광리라 했다. 신라때 낭원대사가 세운 보현사의 "보"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관음리, 위촌리,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와 접해 있다. 1리 마을뒤 선자령 낙맥 아늑한 곳에 보현사가 있다. 보현사(처음에 지장선원이라 했다)는 문주보살이 머물러서 생긴 이름인데, 신라때 문주, 보현 두보살이 돌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한송사에 있다가 한 절에 두 보살이 있으면 않된다고 하여 보현보살이 이곳으로 왔다. 이 절에 보물 제191호인 낭원대사오진탑과 보물 제192호인 낭원대사오진탑비가 있다. 또 보현평에 가마터가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 권 153 강릉대도호부에 보면 "자기소일재부 보현촌"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 가마터가 2리에 있는 사기점이 아닌가 추측된다. 2리 마을 뒤엔 명주의 옛완인 명주군왕의 릉(지방기념물 제12호)이 있고, 그 입구에 삼왕사와 생육신의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청간사가 있다. 마을 맨 안쪽에 대궁산성(지방기념물 제28호)이 있고, 곤신봉 아래 여골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깊은 구렁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송명동에서 합수되어 마을쪽으로 흐르다가, 베리안에서 흘러온 물과 삼왕에서 만나 구산쪽으로 흐른다. 옛날 이 마을 삼왕에 절이 있었는데 절이 가난해 스님들이 바랑(망태)을 천(보해)으로 만들지 못하고 노로 바랑을 만들어 사용 했다. 그래서 이지방 향언에 "삼왕 절 노망태"란 말이 생겼는데, 이 말뜻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나타낸다.
6 송암리 송암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1916년 거릿말, 광양, 미리재, 안마을을 합하여 송암리라 했는데 마을엔 소나무와 바위가 많이 있다.
위촌리에 있는 송양초등학교는 원래 이 마을에 있었으나, 위촌리에 사람이 많이 살아 위촌리로 옮겼다.
마을 뒤엔 고봉이 있고, 보광리와 경계에 있는 미리재에서 발원한 냇가가 마을 가운데로 흘러 강릉시 대전동, 난곡동으로 해서 경포호로 흐른다.
옛날엔 마을로 흐르는 내 주위로 소나무와 바위가 많았고, 마을이 성산 주령의 낙맥이라 묘자리가 유달리 많이 있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강릉시 대전동, 죽헌동, 서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위촌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상노동리, 덕실리, 사기막리와 접해있다
5 위촌리 위촌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우출이라고 하다가 1916년 골아우(鯨岩洞),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恒生洞), 지암돌(芝岩洞)을 합해 중국 주나라의 재상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와 같다고 하여 위촌이라 했다.
渭村里의 속명이 우출인 것은 마을 제일안쪽 골아우에 있는 臥牛型의 묘자리에서 소가 나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그러다가 300여년전 풍기 고을원을 지낸 渭川 金世祿이란 분의 호를 따서 위천이라 하다가 그후 “川” 자 대신 “村”자를 썼다. 위촌은 조선조시대 그림을 잘그린 명서였는데 특히 대나무를 잘그렸다. 그가 그린 대나무에서 밤에 바람소리가 났다고 한다.

마을 서쪽뒤 사실이재와 멍애재가 높이 솟아있고, 마을 한가운데로는 골아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유천동, 죽헌동으로 흘러 경포호로 빠지는 앞내(전천)의 상류인 연계가 흐른다.

내를 중심으로 남쪽이 1리, 북쪽이 2리가 된다. 마을 양지쪽에 송양초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는 원래 송암리에 있던 것을 옮겨 송암리의 “송”자와 위촌리 양짓말에 있던 양석제(서당)의 “양”자를 따서 송양초등학교라 했다. 현 학교 아래 기와집 부근에 서당이 있었는데 한일병탄 후 일본인들이 강제로 없애버렸다.

마을은 고려때 강릉김씨, 강름함씨, 성주이씨, 강릉최씨들이 들어와 살면서부터 열렸고 약 400년전부터 도배제가 있었는데, 마을의 제일 어른인 촌장을 마을 주민들이 뽑고, 정월 초이튿날에 촌장집에 노소 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촌장께 세배를 드린다. 이때의 비용은 마을계인 대동계에서 부담한다.

마을입구(죽일과 경계지역)에 역두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땅속에 묻히면 마을사람들이 잘 살고, 바위가 땅 위에 솟아나면 마을사람들이 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성산면 가운데서 아직까지도 이곳에 명당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구산은 역촌이어서 나쁘고, 금산은 김씨들이 많이 살아 나쁘고, 송암은 강씨들이 많이 살아 나쁜데 이 마을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경포동(유천동), 홍제동, 서쪽은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은 관음리, 금산리, 북쪽은 송암리와 접해있다.
4 금산리 금산리는 조선조 11대 중종때 김관헌이란 분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 제동, 구동, 성하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는 강릉 최씨(평장공파)의 시조인 최입지 공의 묘가 있는 산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옥녀탄금형)이여서 금산(琴山)이라 하다가 강릉김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琴"자 대신 음이 같은 "金"자를 써서 금산리라 한다.
3 관음리 관음리는 1916년 안곡(안국동), 개자리(가좌리), 괴일(고곡동)을 합하여 관음리라 했는데 이는 본동 입구 북쪽 골에 관음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관음은 성산면에서 제일 가운데 위치한 행정리로 동쪽은 금산리, 서쪽은 어흘리, 보광리, 남쪽은 구산리, 북쪽은 보광리, 위촌리와 접해 있다. 옛날 본동에는 관음사가 있었고, 안곡에는 안곡사가 있었는데 어느절이 본사이고 말사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안곡에 5층석탑이 밭 가운데 있다. 옛날 정월 대보름에 이 마을 사람과 금산리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수리봉에 올라가 봉화놀이를 했는데, 횃불을 들고 산에 먼저 올라 갈려고 마을 사람끼리 서로 싸웠다. 왜냐하면 횃불을 먼저 들고 올라가는 마을이 한해 농사가 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한씨와 심씨의 성자를 따서 "한심한 마을"이라 하며 웃는다.
2 구산리 구산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1916년에 갈마동을 합하여 구산리라 했다. 택리지 산수중 산편에 보면 " 위대관령 동통강릉이영하 유구산동 천석절승"이란 구절이 있어 구산은 강릉으로 통하는 관문임을 알수 있는데 옛날 이곳에는 대창도가 딸린 구산역이 있었다. 구산은 위촌리와 더불어 우방수가 들어오는 곳이라 예부터 인물이 많이 났다. 구산이란 이름은 중국 노나라 때 공자의 어머니가 이구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공자를 낳아 공자의 이름이 구인데 이곳이 공자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린 이구산과 비슷하게 생겨 이구산이라 했다. 그후 "尼"자를 떼내고 그냥 丘山이라 하다가 성현의 이름(공자의 이름이 丘)은 함부로 쓰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고 하여 "丘"자와 음이 같은 "邱"자를 써서 邱山이라 했다
1 성산면 성산면은 본래 강릉군 지역으로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여 건금, 위촌, 구산, 송암, 관음, 서원, 제민원의 7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송암, 위촌, 구산, 금산, 오봉, 관음, 어흘, 보광등 8개리로 개편 관할하였고, 1983년 2월 15일 "읍면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구정면 산북리가 편입되어 현재는 9개리로 되어 있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구정면, 강릉시내, 서쪽으로는 평창군 대관령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성산면은 강릉의 중서부에 위치하고 면 소재지는 구산리로 옛날 이곳에 역이 있었다. 옛말에 구산지상, 오계지중에 피난지가 있는데 성산은 강릉의 서쪽에 좋은 피난지가 있다. 강릉향언에 "생거모학산이요 사거성산지라"는 말이 있는데 대관령에서 동북쪽으로 뻗어내린 성산주령에는 옛부터 명당자리가 많아 보광리, 송암리, 위촌리에는 묘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성산주령에 묘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집안 가문의 세를 측정 했다. 성산주령에 묘를 써야 집안이 출세 할 수 있을 정도라 하니 이곳이 지방민들에게 얼마나 좋은 묘자리로 선호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곳은 토질이 좋아 물이 잘 빠지고 삽으로 땅을 파도 쉽게 파진다. 성산은 영서지역에서 강릉으로 오는 관문으로 명주산성, 대궁산성, 제왕산성, 명주군왕의 왕릉이 있다. 마을 서쪽에는 대관령의 험준한 산이 남북으로 뻗어 영서와 경계를 이루고 거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골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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