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정보

강릉 농악 (江陵農樂)

강릉 농악 (江陵農樂) 이미지
  • 소재지강릉시 죽헌길 132 
  • 문의처(강릉농악보존회) 033-646-4470 
  • 지정번호국가무형유산 
  • 지정일1985년 12월 1일 보존회(1986년 11월 1일 인정) 
  • 시대 
  • 소유자/관리자강릉시 
  • 재료 
  • 규모/수량 

소개

예능보유자

- 박기하 (1920.04.07 生, 1985.12.01 인정)

- 정희철 (1934.03.01 生, 2006.06.19 인정)

농악이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우리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닌 가 추정된다.

강원농악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원주, 횡성, 춘천 등지의 영서지역의 농악과 강릉을 중심으로한 영동지역의 농악으로 구분되며 특히 강릉농악은 특유의 향토적 특성을 잘 지니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험준한 산악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지역 나름의 고유한 형태와 멋을 가진 민속놀이, 민요, 토속신앙 등과 함께 농악도 전승,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강원도뿐만 아니라 이 지역과 인접한 영남과 멀리 함경도지방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강릉농악은 강릉문화권이 속한 지방에서 그 특색이 두드러지는데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 ~ 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눈 마을굿으로 지신밟기가 성행하고, 마을의 공동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두레농악이하 할 수 있는 김매기 농악(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것),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 굿(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과 횃불놀이, 다리밟기가 있고, 대관령 서낭제의(祭儀)의 길놀이 농악이 있다.

강릉농악의 편성은 농기외에도 신(神)대를 사용하고 사물(四物)과 소고, 법고, 무동(사내아이)등 잽이들의 수가 각각 같은 수로 4분화되어 있어 전체 구성인원은 36 - 50여명으로 편성된다. 무동을 제외한 모든 잽이들의 복색은 흰바지 저고리를 입는다. 그리고 쇠꾼들은 벙거지에 종이상모를 달고 징, 장고, 북, 소고는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방망이 상모를 쓴다. 법고는 벙거지에 짧은 상모를 달았다. 무동들은 치마저고리에 남색쾌자를 입고 손에는 수건을 들고 머리에는 댕기를 달아 고깔을 쓰는데 고깔에 달린 꽃수가 40개나 되어 우리나라 농악고깔 가운데 꽃의 수가 가장 많다. 강릉농악의 특이한점은 무동이외의 잡색들이 없다는 것이다. 무동춤은 어른들이 배역으로 춤을 추지만 동고리 받기(삼층에서 사층높이로 무동들이 층을 쌓아 놀이하는 것)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쇠치는 소리와 가락은 옛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데 일채, 이채, 삼채, 길놀이, 굿거리 등의 가락을 반복하며 놀이과장은 12과장으로 이루어지며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다.

형식에 있어 지신밟기를 할 때 부르는 사설(고사소리)이 타지방에 비해 길고 다양하다는 점이 또 다른 특색이다. 또한 개인놀이로 장구돌리기라든가 상쇠가 잽이의 어깨위로 올라가 상모돌리기를 하는것과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 또한 그러하다. 특히 단체놀이로 무동들이 춤과 동고리, 농경생활을 모의하는 연극적 놀이인 농사풀이는 강릉농악의 대표적인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은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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