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가면극

관노가면극

관노가면극
농경의식과 관련된 부락제에서 계속하여 연희 - 관노가면극

옛부터 강릉단오제에는 관노들에 의해 탈놀이가 행해졌는데 행사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봉안하고 음력 5월 1일부터 화개를 꾸미어 성황당 앞에서 공연하였다.

  • 문의처(보존회) 033-643-1301 / (문화유산과) 033-640-5580
  • 행사장소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죽헌길44번길 27
  • 행사기간연중
  • 주관강릉시, 강릉단오제보존회

소개

특징 및 의의
  • 성황 계통의 제의연희로서 가면극의 토착성을 시사
  • 한국 가면극 중에서 유일한 묵극으로 춤과 동작이 몸짓언어로 이루어진다.
  • 관노들에 의해서 추어진 관민이 일체가 된 연희
  • 양반광대를 통한 해학성의 발로로 풍자개념이 약화되고 화해와 지역의 안녕을 추구
  • 소매 각시의 규범적 행위를 통하여 도덕성과 정조의식을 발현
  • 장자마리와 시시딱딱이의 상징을 통하여 권선징악의 의미와 풍요기원 구현
  • 민간전승으로 지역성을 살렸으며 춤사위와 음악의 토속성 강조
유래

옛부터 강릉단오제에는 관노들에 의해 탈놀이가 행해졌는데 행사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봉안하고 음력 5월1일부터 화개를 꾸미어 성황당 앞에서 공연하였다. 이 전통적인 민속연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농경의식과 관련된 부락제에서 계속하여 연희되어 왔음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태조(918~943)의 남정시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하였다는 기록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으며 생육신의 한사람인 추강 남효온(1454~1493)의 문집인 "추강냉화"에도 택일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연 삼일동안흥겹게 즐겼다 하며 허균의 문집, "대관산신찬립서"에 계유년(1603) 5월에 이르러 잡희를 베풀어 신을 즐겁게 하였다고 전한다.

강릉의 향토지인 "임영지"에도 무관에 의한 굿과 창우들의 연희가 계속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관고가면극의 역사는 마을 공동의 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근래에 "김동하", "차형원" 등의 고증에 의하여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제 제 13호로 지정되어 "김동하", "차형원"이 기능보유자가 되었으며 1985년부터는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본래의 모습인 민간전승의 길로 재현하게 되었으며 1993년 8월2일 "권영하"가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연희내용 및 등장인물
제1과장 장자마리 개시

탈놀이의 시작과 함께 제일 먼저 포대자루와 같은 포가면을 전신에 쓴 2명의 장자마리가 연희개시를 한다. 요란하게 먼지를 일으키며 불룩한 배를 내밀면서 놀이마당을 넓히기 위해 빙빙 돌아다니고 관중을 희롱하기도 하고 선 사람을 앉히기도 하며 모의 성적인 행위의 춤을 춘다.

옷의 표면에는 말치나 나리 등 해초나 곡식을 매달고 속에는 둥근 대나무를 넣어 배가 불룩하게 나온다. 장자마리는 희극적인 시작을 유도하며 마당을 정리하고 해학적인 춤을 춘다.

제2과장 양반광대, 소매 각시 사랑

양반광대와 소매 각시는 장자마리는 마당을 정리한 후 양쪽에서 등장한다. 양반광대는 뾰족한 고깔을 쓰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고 위엄 있게 등장하여 소매 각시에게 먼저 구애를 한다.

소매 각시는 얌전한 탈을 쓰고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입고 수줍은 모습으로 춤을 추며 양반광대와 서로 뜻이 맞아 어깨를 끼고 장내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나눈다.

제3과장 시시딱딱이 훼방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호방한 칼춤을 추며 뛰어 나온다.

양반광대와 소매 각시의 사랑에 질투를 하며 훼방을 놓기로 모의하고 때로는 밀고 잡아당기며 훼방하다가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벽사가면을 쓰고 작은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

제4과장 소매 각시 자살소동

시시딱딱이가 양반광대와 소매 각시의 사이를 갈라 한쪽에서는 양반광대를 놀리고 다른 편에서는 소매 각시를 희롱하며 함께 춤추기를 원하나 완강히 거부한다. 이를 본 양반광대는 크게 노하며 애태우나 어쩔 수 없이 분통해 하다가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 소매 각시를 끌고 온다.

양반광대의 질책에 소매 각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긴 수염에 목을 매려고 한다. 결국 소매 각시의 결백 호소에 측은한 생각으로 소매 각시를 용서하며 소매 각시는 결백을 증명한 셈이 된다.

수염으로 목을 감는 모습은 해학적이며 권위의 상징이었던 수염을 당기어 결백을 시인케 하는 내용은 풍자적이기도 하고 죽음의식을 초월한 희극화된 표현이다.

제5과장 양반광대, 소매 각시 화해

수염을 목에 감고 자살을 기도하여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소매 각시의 의도는 양반광대의 관용과 해학으로 이끌어져 서로 오해가 풀리고 결백함이 증명되므로 놀이는 흥겨운 화해와 공동체 마당으로 끝을 맺는다.

음악을 담당하던 악사들과 괘대, 구경하는 관중이 함께 어울려 군무를 하며 부락제 의의를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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