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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5.17, 조회수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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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릉 학생 독립운동 : 매일신보 19300731
작성자 함문숙
내용 강릉학생독립운동 : 매일신보 193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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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학교 맹휴 점차 확대
학부형 회의 개최, 당국에 진정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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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기 보도와 같이 강릉농업학교 맹휴 사건의 문제는 일전하여 학교 대 학부형 간 반목을 연출하였다.
16일 오후 3시경 강릉 금정 예배당 부속실에서 학부형 약70여 명이 집합하여 학부형 대회를 개최하고, 임시 의장 兪致祥 군을 선거한 후, 전일 그 사건에 대하여 학부형 대표위원이던 李元載는 이번 맹휴사건 발생 이래의 경과와 전말을 보고하였다.
장시간에 걸쳐 토의를 거듭한 후 아래와 같은 사항을 결의하여 道(강원도) 및 本府 학무 당국에 진정하기로 하고 기초위원으로 曺圭大, 兪致祥, 曺上煥, 崔準集, 李元載 등 여러 명을 선정한 후 진정 방법에 대하여 우송 또는 출두하는 것은 다음 토요일(19일)에 다시 회합하여 결의하기로 결정하고 오후 7시 산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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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 6명 퇴학 처분
학교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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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기 보도와 같이 강릉농업학교 맹휴 사건은 돌연 학교측 태도가 매우 강경하여지면서 맹휴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처분을 하였다고 22일 발표하였다.

1. (3학년) 金南斗, 金宗鎬, 權赫南
(2학년) 朴千鳳, 南宅星, 張聖奎는 학칙 제21조 제1항에 의하여 퇴학
2. (2학년) 崔善章은 학칙 제23조 제3항에 의하여 무기정학
3. (3학년) 金振河, 曺圭鼎
(2학년) 洪淳巨, 金南龍, 崔年昇, 壁國忠
(1학년) 鄭河龍은 학칙 제23조 제2항의 이하여 2주간 근신
4. 기타 전부는 귀책



(해석)
강릉농업학교 맹휴가 발생하자 70여 명의 학부모들이 모여 학생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1930년 7월 16일 오후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4시간에 걸친 회의는 7월 19일(토요일)에 재차 진행하기로 하였다. 학부형들이 학내 사건에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부형 회의는 재학생 兪致祥 군을 임시 의장으로 선출하여 진행되었다. 맹휴 학생들의 의사가 주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회의였다. 강릉은 교육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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