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일 2024.06.11, 조회수 56
시민참여 > 자유게시판 상세보기 - 제목, 작성자, 내용 정보 제공
제목 강릉 학생 독립운동 : 부산일보 19330628
작성자 함문숙
내용 강릉 학생 독립운동 : 부산일보 19330628.


------------------------
강릉농학 맹휴 학생
마침내 피를 보인 참상
배신자에게 제재를 가하다.
停學者 14명 발생
--------------------------

강릉농학교 맹휴 사건은 3일 지사가 강릉에 와서 이면이 평정되었으나, 생도측에서 여전히 도처에서 會合하며 결속을 다져가는 일에 노력하고 있었다.
24일(1933년 6월 24일) 아침 마침내 3년생 崔仁吉, 高徹柱 두명이 배신자라고 해서 대세는 교실 내에서 강력을 가하여 얼굴과 기타 상당한 중상을 입어 유혈의 참상을 일으켰다.
한편으로는 학교측에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한 3학년 8명, 2학년 6명, 계 14명을 무기정학 처분하였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정학자 : 李原明, 辛國善, 崔哲圭, 金昌銖, 李範錫(이상 2학년)
崔鎬燮, 金天會, 金畑道, 李東彦, 金載根, 田致培, 金鐘河 (이상 3학년)



(해석)
강릉농업학교에서 1933년 3번째 맹휴를 진행하던 중 3년생 崔仁吉과 高徹柱가 맹휴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배신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학생측의 대응이나 비밀결사 내용을 학교측에 비밀리 전달한 것이 발각되었을 것이다.

강릉농업학교 학생들은 강릉의 여러 장소에서 비밀리에 모여 회의를 하며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이때는 강릉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후 1933년 10월에 경성 서대문경찰서에서 강릉으로 파견된 형사들이 와서 비밀결사와 관련된 청년 20여명을 체포하였다. 강릉농업학교를 습격하여 수업 중인 학생들을 무력으로 검거하였다.(조선중앙일보 19331022)

맹휴 학생들은 2명의 배신자들에게 얼굴과 기타 중상을 입혔다. 피를 흘릴 만큼의 강력을 가할 중대한 반역이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강력 사건에 관계된 14명에게 정학 처분을 하였다.
정학자의 명단은 조선중앙일보 19330704와 일부 다르다

崔仁吉과 高徹柱 2명의 배신자도 강릉 학생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컨텐츠 만족도 조사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