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정보

율곡유품(栗谷遺品)

율곡유품(栗谷遺品) 이미지
  • 소재지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오죽헌시립박물관) 
  • 문의처오죽헌 시립박물관 033-660-3311 
  • 지정번호유형문화유산 
  • 지정일1971년 12월 16일 
  • 시대조선시대 
  • 소유자/관리자강릉시 
  • 재료한지 및 석재 
  • 규모/수량벼루: 16.1㎝×16.1㎝, 두께: 0.8㎝ 토지양여서: 26㎝×46㎝ 

소개

1. 벼루

세간에는 단계석(丹溪石)으로 알려졌으나 1973년 창덕궁(昌德宮)에서 열렸던 명연전(名硯展)에서 고산석(高山石)이라고 감정된 바 있다. 연면(硯面)은 타원형으로 가운데가 오목하게 되어있고 상하부에는 지엽(枝葉)을 양각하여 벼루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였다. 벼루의 뒷면에는 1788년 (정조 12년)에 정조가 율곡의 유품이 강릉 오죽헌에 있다는 말을 듣고 가져오라하여 친히 보시고 감격하여 '함무지상공석 보궐시 용귀동 운발묵문재자'(涵 池象孔石 普厥施龍歸洞 雲潑墨文在玆)라는 명(銘)을 음각하였다. 그 위에는 '어제(御製)어필(御筆)' 이라 새겨져 있다. 또한 율곡의 유품을 소중히 보존하라고 유품을 보관할 전각을 짓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제각(御製閣)이다.

2. 토지양여서(土地讓與書)

율곡이 그의 토지를 이종인 권처균(權處均)에거 양여한다는 증서로 오늘날의 계약서나 각서와 같은 성질의 문서이다. 이 양여서는 선조 12년(1579) 율곡이 44세때 친필로 작성한 것으로 이 때는 벼슬을 버리고 해주(海州) 석담(石潭)에 내려가서 은거하고 있을 때였다. 증서의 직함(職銜)은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이이(李珥)라 쓰고 수결(手決)을 했으며 2명의 증인까지 세워 이 증서의 신빙성을 확실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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